“아! 조창호, 당신은 이 땅의 진정한 영웅이셨습니다”

귀환 국군포로 조창호 (예)중위의 파란만장한 삶을 주제로
여성악극 ‘아, 나의 조국!’ 성황리 공연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 낙동강아 잘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 꽃잎처럼 떨어져간 전우야 잘자라

우거진 수풀을 헤치면서 앞으로 앞으로 / 추풍령아 잘 있거라 우리는 돌진한다 / 달빛어린 고개에서 나누어 먹던 / 화랑담배 연기속에 사라진 전우야"


6일 오후 5시가 막 넘어선 시각, 둔중한 종소리가 실내에 뎅 뎅 하고 울려 퍼지자 하나둘 조명이 사라지더니 이윽고 하모니카에 음절을 실은 애절한 군가 '전우야 잘자라'가 국립극장 KB 청소년 하늘극장 안을 휘감고 돌자 일순간 고요함이 장내를 엄숙하게 맴을 돈다.

바로 민족 분단의 서막을 연 처절한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과 그로부터 43년간 북한에서 노동교화소와 아오지 탄광 등지를 전전하며 국군포로로 억류돼 파란만장한 인고(忍苦)의 삶을 영위해 오다 1994년 꿈에도 그리던 조국 대한민국 품으로 귀환한 고(故)조창호 육군중위를 기린 여성악극 뮤지컬 '아, 나의 조국!'이 막을 여는 순간이었다.

▲ 연극 '아, 나의 조국!'. 5일 개막에 이어 이틀째 공연이 이어진 극립극장 KB 청소년하늘극장. 출연진과 관객들이 하나되어 손뼉을 치며 군가를 합창하고 있다. ⓒkonas.net

이 날 공연은 이틀째 공연으로 낮 공연에 이어 두 번째 공연시간이었다. 700여 좌석으로 이루어진 청소년 하늘극장은 무대를 중심으로 좌우측 부분만 어느 정도 비어있을 뿐 대부분의 객석은 꽉 들어찼다.

'아, 나의 조국!'은 출연진 배우 모두가 여성으로 된 순수 ‘여성악극’으로 극본을 쓴 이는 소설가이자 평론가로 보수우파 운동을 벌이고 있는 복거일씨가 연출까지 담당한, 국군포로 출신의 한 가족사를 통해 본 분단의 비극과 지금 현재도 북녘 하늘아래서 그들이 나고 자란 조국 대한민국을 그리는 국군포로에 대한 문제해결을 촉구하고, 이를 우리사회는 물론 미 정계와 국제사회에 크게 알린 조창호 중위의 죽음을 우리사회가 다시 새롭게 재조명해야 한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나 올해가 6.25전쟁 60주년을 맞는 뜻 깊은 해이자 주제 자체가 꽃다운 청년에서 백발이 성성한 후즐그레한 노인으로 변모해 잃었던 조국을 되찾은 조창호 중위의 지난한 삶의 일대기를 엮은 작품이어서 인지 객석에는 6.25전쟁 세대인 참전한 참전용사를 비롯해 의외로 많은 중년 여성이 자리를 차지하고, 젊은 엄마들까지도 아이들 손을 잡고 함께 관람해 이채를 띄기도 했다.


▲ 공연장인 극립극장 KB 청소년하늘극장. 공연을 위한 입장시작시간이 가까이 되자 관람객들이 서서히 입구로 들어서고 있다. ⓒkonas.net


연극은 1950년 6.25일 북한 공산군의 불법침략으로 나라의 안위가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에 빠지자 당시 연희전문 1학년에 재학 중이던 조창호 학생이 자원입대해 포병(당시 소위 계급)관측장교로 전선에 투입되었다가 1951년 강원도 인제군 한석산 전투에서 중공군에게 포위되어 결국 포로로 끌려가 탈출을 시도하다 13년 형의 노동교화형을 산데 이어 ‘국군포로’라는 성분불량자로 감시 대상자가 되어 자신은 물론 자녀들까지도 북한 당국으로부터 모진 수난과 어려운 삶을 영위해야만 했던 아픈 과거와 더불어 또 다른 이산의 아픔을 되돌아 보게 한다.

약 1시간20여분의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무대와 객석에서는 노래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미아리 눈물고개 님이 떠난 이별 고개 / 당신은 철사 줄로 두 손 꼭꼭 묶인 채로 /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 절며 / 끌려가신 이 고개여 한 많은 미아리 고개”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메었더냐 /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 이후 나홀로 왔다”

6.25전쟁 당시 시대상을 가장 잘 나타내며 우리 민족의 아픔을 대변했던 대표적인 16곡의 전쟁가요가 계속해서 울려 퍼지고, 노래에 맞춰 배우와 관객이 하나 되어 손뼉과 발바닥 장단을 두드려 가며 연극 속으로 빠져 드는 것이다.


▲ 공연이 시작되기 전 무대 중앙 좌석에 자리한 백선엽 대장과 박세환 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이 무언가 다정스레 얘기를 나누고 있다. ⓒkonas.net


연극은 극의 말미 조 중위의 북에 남겨두고 온 자식을 그리는 마음을 통해 이산가족의 또 다른 한과 고통, 그리고 그의 절규를 통해 우리사회가 국군포로 문제에 얼마나 등한시 해 왔던가를 일깨워준다.

이는 실제로 그가 지난 2000년 봄 이 문제를 사회에 알려 더 크게 부각시키고자 기자회견을 개최하려 하지만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간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이라 이 문제가 더 확산될 경우 김대중 정부에 절대 이롭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잘 알고 있는 관계기관이 이를 저지하고 기자회견을 무산시킨 것이다.

이에 조 중위는 "국군포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정상회의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항변하면서 "이것이 제가 그리도 그리워 한 내 조국 대한민국이란 말이냐? 조국을 위해 싸웠고, 43년간을 단 한 번도 잊지 않은 조국 대한민국이 아직도 북에 있는 국군포로들을 내버려 둔다면 어찌 이런 나라를 나라라고 할수 있겠느냐?"고 부르짖는 장면에서, 국가를 위해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친 국민을 위해 과연 국가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를 깨닫게 해주기도 한다.


▲ 박수로 호응하는 관객들. ⓒkonas.net


그러면서 2006년 11월9일 조창호 중위가 지병으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치자 참여정부가 그의 죽음에 냉담해 있을 때 대한민국재향군인회가 750만 향군회원의 이름으로 향군장으로 그의 장례를 치른 것을 감사해 한다. 하지만 조국을 위한 삶을 살다 간 한 인간의 죽음을 국가가 버린데 대한 잘못을 통절하게 깨우친 뒤 이제라도 그의 장례를 국가(국군장, 육군장)가 다시 치러 위대한 영웅을 기려야 한다는 메시지를 끝으로 무대의 조명이 사라진다.

이 날 공연에서는 매우 가슴 뭉클한 순간이 있었다. 참전노병과 예비역 등 참석한 관객들이 마침 이 날 공연장을 찾아 함께 연극을 관람한 6.25한국전쟁의 영웅이자, 살아있는 전설로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백선엽 (예)대장과의 만남이었다.

백 장군의 관람사실을 안 연출팀이 극이 시작되기 전 백 장군을 소개하고 “전쟁세대도 아닌 저희도 장군님을 너무 잘 아는데 장군님께 인사를 했으면 어떻겠느냐”는 제의에, 참석자 태반이 일어나 “통일”이라는 구호와 함께 거수경례로 ‘예’를 표해 훈훈한 장면을 보이기도 했다.


▲ 공연이 끝나고 백선엽 대장이 무대로 내려가 공연에 나선 출연진을 일일히 격려하고 있다. 백 장군이 끌어 안고 있는 배우는 이 날 조창호 중위로 열연한 배우다. 조 중위는 이 날 백선엽 장군에게도 귀환 신고를 해 관객들 모두가 가슴뭉클한 순간을 경험하기도 했다. ⓒkonas.net


백 장군은 또 연극이 끝난 후 조창호 중위로 열연한 출연자로부터 ‘귀환신고’를 받고는, “오늘 정말로 감사합니다. 금년이 6.25전쟁 60주년이 되는 해인데, 우리 선배와 조상들이 6.25전쟁에서 위대한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의 우리나라는 없었을 것입니다”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하고 “오늘 복거일 선생의 극이 하나의 봉화로 시작되어 6.25 60주년을 상기하고, 조상의 희생위에서 발전된 이 나라가 영원히 발전하고 번영되기를 다짐합시다. 대한민국 만세”를 외쳐 극장 안이 한동안 우레 같은 박수소리로 위대한 노(老)장군의 말씀에 경의를 다했다.

한편 이 날 공연에는 백선엽 장군을 비롯해 김문수 경기도지사, 박세환 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 이동복 전 국회의원, 서울시재향군인회장과 향군 임직원과 회원, 고인과 함께 했던 현재는 미국에서 거주중인 미망인 윤신자 씨 등이 참석해 눈시울을 붉혀 가며 관람했다(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 공연이 시작되기 앞서 박세환 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이 대기실을 방문해 연출가인 복거일씨와 배우들을 격려하고 있다. ⓒkonas.net


▲ 박 회장이 출연 배우와 담소를 나누고 있다. 군복을 입고 있는 배우는 이 날 출연 중 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으로 분한 이상희 배우. ⓒkonas.net



'영원한 국군' 조창호 중위, 하늘나라에 영원히 잠들다
돌아온 死者 조창호와 北에 억류된 국군포로
[인터뷰] 복거일 "조창호는 이 시대의 영웅"




[코나스 www.konas.net 2010.3.7]




Posted by no1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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