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도떼기시장과 같은 전시회장에서 클림트의 에로티시즘을 음미(?)한다는건 어색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유모차에서 울어대는 아이를 달래는 아빠, 엄마 손목을 붙들고 늘어져 징징거리는 꼬마 녀석, “건성으로 보지 말고 하나하나 꼼꼼히 들여다보란 말이야” 아이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전시장을 도는 부모들 틈바구니에서 클림트를 느끼라니...이거 참 고역이다. 아시아 최초의 클림트 단독 전시, 21세기 마지막 전시라는 홍보공세에 절대 놓쳐서는 안되겠다는 다짐을 각인시켜 놓고, 벼르고 별렀던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클림트 황금빛 비밀’ 특별전을 찾았다. 클림트 전이 열린다는 것 외에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찾았던 터라, 페인팅보다 드로잉이 많은 점에 약간 실망(?)하면서, 주말을 맞아 클림트 전을 자녀들에게 꼭 보여주겠다는 열의로 가득한 학부모들, 클림트 작품 속 에로틱한 그녀들을 직접 보기위해 찾은 많은 연인들의 번잡함 속에서도 사랑과 자연을 숭배한 한 화가의 열정 속으로 곧 빠져들 수 있었다. 클림트는 그림 이전에 화려한 여성편력으로 유명하다. 실제로도 그는 자신의 모델들과 매순간 열정을 불태웠고 오랜 연인이었던 마리아 짐머만을 비롯해 그녀들로부터 13명의 자녀를 두었다고 한다. <유디트>, <아담과 이브>를 비롯해 팜므파탈 여성의 퇴폐적이고 고혹적인 매력이 가득한 작품들 속에는 그의 사랑과 욕망에 대한 탐구심으로 가득하다.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해 목을 베어버린 이스라엘 여인 유디트를 그린 <유디트1>. 치명적인 매력으로 다가가 유혹한 뒤 한 사내의 머리를 단숨에 베어 쥐고는 나른한 듯 내려다보는 표정엔 승리의 도도함마저 흐른다. 베어버린 사내의 머리위에 지긋이 얹어 놓은 가느다란 손가락과 그 사이로 삐져나온 검은 머리털은 섬짓함보다 노골적인 관능이 넘친다. 마치 열띤 사랑을 막 끝낸 듯, 발그레하게 홍조띤 모습으로 졸린 듯한 눈을 살짝 치켜뜬 채 고개를 약간 위로 쳐들고 아래를 지긋이 내려다보는 모습은 그 자체로 에로티시즘의 극치다. 목을 휘감고 있는 황금빛 장식은 그녀의 당당한 승리를 더욱 빛나게 한다. 보티첼리 등 당대의 대표적 화가들이 즐겨 그렸던 유디트가 클림트의 손에서 애국자가 아닌 관능적인 여인으로 태어났다. 풍성한 검은 머리, 살짝 벌린 붉은 입술, 바로 감길 듯한 두 눈매와 단단해 보이는 턱선까지. 하지만 좀더 자세히 보면 두 눈이 짝짝이인 것을 알아챌 수 있다. 왼쪽 눈은 예의 알던 그 매력적인 눈이지만, 오른쪽 눈에선 이상하게도 묘한 죽음의 기운이 느껴진다. 클림트는 그의 부친과 동생 에른스트가 뇌출혈로 사망한 탓에 평생을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면서 강박에 사로잡혀 살던 사람이기도 하다. 클림트 본인도 뇌출혈과 폐렴으로 60을 넘기지 못했다. 죽음은 언제고 자신에게 들이닥쳐 올 미지의 세계이자 공포의 세계로 그가 형상화했던 하나의 뚜렷한 주제이기도 했다.
‘은물고기’ 물의 요정에게서는 검고 푸른 죽음의 빛깔이 느껴진다. 붉은 빛깔을 띤 요정을 납빛같은 청색의 요정이 심각하게 쳐다보고 있는듯 하다. 마치 삶과 죽음에 대한 알레고리를 담은 듯, 삶을 냉소하는 죽음의 모습에서 생사의 순환과 클림트 자신의 불안감을 표출하고 있는 것만 같다. 이질적인 대조와 낯설고 신비로운 분위기가 시선을 사로잡는 기묘한 매력으로 끌어당기는 작품이다. 전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클림트의 드로잉 작품들 속 여인들은 대부분 대담한 포즈를 취하고 있고, 몇 가닥 선이 오고가지 않은 것 같아도 한결같이 보는 이들을 유혹하는듯 했다. 은밀하고 농염한 여성성으로 매혹하면서도 짐짓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는, 마치 관음증을 즐기는 듯한 느낌의 도발적인 작품도 꽤 발견할 수 있었다.
작품을 관통하는 여성과 자연이란 주제를 통해 강렬한 삶의 욕망, 생성과 소멸의 이치에 천착했던 클림트의 예술가적 고뇌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 클림트는 삶에 대한 욕망이 강할수록 죽음에 대한 공포도 강하게 느낌과 동시에 그럴수록 여성을 탐닉했던 것 같다. 여성을 통해 존재를 확인하고자 애썼고, 그럴수록 여인은 찬양의 대상임과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전시회를 통해 본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남성은 무력하기 짝이 없다. 클림트는 죽음도 하나의 몽환적 에로티시즘의 정점으로 느꼈던 것일까? 황금빛 화려함으로 둘러쌓인 작품에서도 어두운 그림자가 느껴졌던 것은 나만의 느낌뿐이었을까? 구스타프 클림트, 그의 관능에 몰입할수록 그 사이를 비집고 비추는 죽음의 알레고리가 더 기묘하게 다가왔다.
박주연 기자 phjmy9757@naver.com | ||||||||
'Galleri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상의 나래 펼쳐라” 여름방학 기획 ‘원더랜드전’ (0) | 2010.09.03 |
---|---|
제1회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에 이승택 등 4인 선정 (0) | 2009.11.22 |
서정욱 갤러리, 이윤아 작가의 ‘Thinking Space’ 展 (0) | 2009.10.17 |
불친절한 아티스트의 한국 미술계 자극 (0) | 2008.01.25 |
아티스트 마리킴의 ''팝초현실주의'' 와 문화 충격 (0) | 2008.0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