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한 귀신놀음 이름값 못한 ‘공포물’
올여름 극장가의 특징은 두 가지다. 한국 공포영화의 몰락과 할리우드 대작 영화의 부활이다. 양적인 면에서 올해 공포영화는 여느 해보다 강세였다. 2002년 〈폰〉이 200만 명, 2003년 〈장화, 홍련〉이 300만 명 관객동원을 기록하면서 공포영화는 ‘여름 특산품’으로 자리잡았고 이를 반영하듯 공포영화의 퍼레이드라고 할 만큼 많은 영화들이 개봉했거나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결과는 최악이다. 〈페이스〉와 〈인형사〉는 처참하다는 표현이 적합할 흥행성적을 냈고, 〈령〉은 가까스로 백만 고지 문턱을 넘겼다.(최근 전국 관객 백만명 동원은 ‘면피’ 수준으로 문턱이 낮아졌다). 5일 개봉한 〈분신사바〉의 결과는 두고 볼 일이지만 첫 주말 성적으로 예상컨대 안병기 감독의 전작인 〈폰〉만한 성적을 내기는 힘들어 보인다. 흥행성적보다 더한 문제는 이 영화들의 완성도가 ‘관객을 깔보는 수준’이라는 데 있다.
머리 풀어헤친 귀신의 수와 효과음의 강도만으로도 관객을 얼릴 수 있다는 듯 초반부터 영화는 귀를 괴롭히는 소리를 남발하고 맥락도 없이 꾸역꾸역 등장하는 ‘사다코’(〈링〉의 귀신)의 후예들은 ‘목욕탕 누드’처럼 아무런 긴장감을 일으키지 못한다. ‘공포’는 커녕 ‘서프라이징’에서도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 이 영화들은 강박적으로 반전을 마련해놓고 있는데, 어떤 관객이라도 영화를 10분만 보면 “아, 저 사람이 귀신이겠군” 예상할 수 있을 만큼 빈약한 이야기 구조를 드러낸다.
이 영화들은 높은 값으로 외국에 사전 판매하는 ‘쾌거’를 기록했다. 〈분신사바〉는 300만 달러에 일본에 팔렸고, 〈인형사〉와 〈령〉역시 100만 달러가 넘는 사전판매 수익을 거뒀다. 칸에서 만난 한국영화 수출업무 담당자들은 “한국이 공포영화 강국으로 자리잡은 것 같다”고 입모아 이야기했다. 그러나 뚜껑이 열린 뒤 이 ‘수출역군’들에 대한 기대는 우려로 바뀐다. 1980년대 중후반 세계시장으로 비상했던 홍콩 액션영화가 구태의연한 관습만 나열하는 무차별 자기복제로 불과 몇해 만에 몰락했던 전례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비단 홍콩영화 뿐이 아니다. 올해 말 그대로 ‘화려하게’ 재기한 헐리우드 대작 영화들 역시 뻔한 영웅주의와 ‘크기’에 대한 병적 집착이 불러 온 몇해 간의 고전에 대해 절치부심한 결과다.
물론 〈시실리 2㎞〉 〈알포인트〉 〈쓰리, 몬스터〉등 몇편의 공포영화가 아직 남아 있다. 남은 영화들이 ‘몰락’이라는 판단을 뒤집는다면 좋기는 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입추가 지났다. 천상 올여름은 공포영화로 인해 시원해지기는커녕 더욱 푹푹 쪘던 계절로 남을 것 같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한겨레 www.hani.co.kr 2004.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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